인공지능(AI) 시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예측했던 그의 실패 원인은 시장 예측이 아니라 과도한 차입 투자, 즉 '레버리지'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AI 투자 열풍 속에서 무리한 차입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SA)의 창업자인 레오폴드 아셴브레너(Leopold Aschenbrenner·24)는 지난달 말 자산의 약 67%를 잃고 보유하고 있던 핵심 기술주를 경쟁사에 대거 매각했다.
한때 수백억 달러 규모로 평가받던 그의 투자 자산은 불과 며칠 사이 급격히 축소됐으며, 펀드에 남은 자산 가치도 100억 달러 이상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셴브레너는 AI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독일 베를린에서 성장한 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AI 연구에 뛰어들었고, 2023년 챗GPT 개발사인 오픈AI(OpenAI)에 합류했다.
그러나 입사 1년 만에 회사를 떠난 뒤 발표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라는 장문의 에세이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는 당시 "인공지능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인간 수준을 넘어설 것이며, 세계는 그 변화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AI 반도체 부족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 범용인공지능(AGI) 시대의 도래를 누구보다 먼저 예측한 그의 분석은 투자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아셴브레너는 자신의 에세이 이름을 그대로 따 헤지펀드 SA를 설립했다. AI 관련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인프라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한 결과 올해 5월까지 270%에 달하는 놀라운 수익률을 기록했다.
투자 자금은 빠르게 몰려들었다. 골드만삭스 출신 투자 전문가들이 합류했고, 세계적인 트레이딩 회사인 제인 스트리트(Jane Street)도 투자에 참여했다.
운용 자산은 단기간에 200억 달러를 넘어섰고, 그는 월가가 가장 주목하는 젊은 투자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SA는 자기자본의 3~4배, 많게는 그 이상의 자금을 차입해 투자하는 고위험 전략을 사용했다.
문제는 최근 투자자들이 AI 공급망 기업들의 실제 수익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했다. AI 관련 대형 기술주들이 일제히 하락했고,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주가가 급락하자 금융기관들은 SA에 마진콜(Margin Call), 즉 추가 증거금 납부를 요구했다.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보유 주식을 급하게 처분해야 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월가 경쟁사들이 SA의 투자 포지션을 파악한 뒤 공매도에 나서면서 주가 하락 압력이 더욱 커졌다.
결국 아셴브레너는 결혼식을 하루 앞둔 지난달 29일 밤 긴급히 투자은행과 경쟁사들을 불러 100억 달러 이상 규모의 주식을 할인된 가격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뉴욕타임스는 억만장자 케네스 그리핀(Kenneth Griffin)이 설립한 세계 최대 헤지펀드 가운데 하나인 시타델(Citadel)이 최종 인수자로 선정됐다고 보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결혼식 전날 밤은 투자 자산을 급히 정리하는 밤샘 협상으로 바뀌었다.
결혼식 당일 아셴브레너는 투자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모든 책임을 인정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고 밝혔다.
월가에서는 그의 솔직한 인정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면서도, 과도한 레버리지를 활용한 투자 전략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AI 산업 자체의 실패가 아니라 '과도한 차입 투자'의 위험성을 보여준 사례라고 강조한다.
AI는 앞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지만, 미래 성장성을 믿고 빚을 과도하게 내 투자할 경우 작은 시장 조정만으로도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AI 관련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일부 투자자들이 레버리지를 활용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어 비슷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사건은 캐나다와 미국 한인 투자자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최근 AI와 반도체 관련 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부 투자자들은 신용거래나 대출을 이용한 레버리지 투자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무리 뛰어난 투자 아이디어라도 과도한 차입은 시장 변동성을 견디지 못하게 만든다"며 "장기적인 분산투자와 감당 가능한 범위 내의 투자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AI 시대를 누구보다 먼저 예측했던 천재도 결국 피하지 못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욕심을 키운 레버리지'였다. 월가는 이번 사건을 두고 "예측보다 중요한 것은 위험 관리"라는 오래된 투자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뉴스/사진: 밴쿠버교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