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캐나다와 합의했다”, 카니는 “합의 향해 가는 중” 신중
美, 200억달러 캐나다산 제품 50% 관세 사흘 연기. 22일 0시1분 새 시한
철강·알루미늄·자동차 관세 인하 가능성, 美 위스키·와인 캐나다 매장 복귀가 핵심 조건
카니, 주총리들에게 미국산 주류 판매 재개 요청. “낙농 공급관리제는 지킨다”
미국과 캐나다가 양국 경제를 다시 뒤흔들 수 있었던 대규모 관세전쟁을 막기 위한 막판 협상에서 사실상 합의 단계에 접근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산 제품에 예고했던 50% 관세를 시행 직전 사흘간 전격 연기한 가운데 미국은 캐나다산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 등에 대한 관세를 낮추고, 캐나다는 보복 조치의 상징이었던 미국산 위스키와 와인 등 주류를 다시 매장에 진열하는 방안이 핵심 교환조건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캐나다와 합의했다”고 선언했지만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아직 세부사항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협상이 최종 타결될 경우 지난해부터 양국 관계를 얼어붙게 했던 무역전쟁이 중대한 전환점을 맞을 전망이다.
CBC에 따르면 미국과 캐나다 협상단은 20일 철강·알루미늄·자동차 관세와 미국산 주류의 캐나다 시장 복귀 등을 놓고 최종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당초 미국은 약 200억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수입품에 50% 관세를 부과할 예정이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발효를 불과 2시간가량 앞두고 이를 사흘 연기했다. 새로운 시한은 22일 토요일 오전 0시1분(미 동부시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캐나다와 매우 좋은 대화를 했고 합의에 도달했다”며 양국 모두에게 “매우 공정한” 합의라고 주장했다. 그는 캐나다가 다른 국가보다 높은 관세를 부담하고 있었다며 일부 관세를 다른 국가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낮출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캐나다 정부의 표현은 다소 달랐다. 카니 총리는 양국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아직 협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라며 “합의를 향해 가고 있다”고 밝혔다. 도미닉 르블랑 캐나다·미국 무역장관 역시 워싱턴에서 협상을 마치고 오타와로 돌아온 뒤 “해야 할 중요한 작업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 측 수석협상대표 재니스 샤렛도 세부 문구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의 최대 관심사는 캐나다 경제의 핵심 산업인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얼마나 낮아지느냐다.
협상 내용을 잘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캐나다는 철강과 알루미늄,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의 관세 인하를 확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다만 정확한 세율과 적용방식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특히 자동차의 경우 관세율뿐 아니라 캐나다·미국·멕시코협정(CUSMA·미국명 USMCA)의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캐나다산 자동차와 부품을 어떻게 취급할지가 중요한 쟁점으로 남아 있다.
캐나다 자동차업계에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업계에서는 미국이 캐나다산 자동차와 부품에 현재 논의되는 수준의 관세를 장기간 적용할 경우 기존 차량 모델의 생산주기가 끝나는 시점부터 캐나다 공장의 경쟁력이 급격히 떨어져 일부 생산시설이 폐쇄될 수도 있다고 경고해왔다.
철강과 알루미늄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고율 관세가 장기화하면서 캐나다 생산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크게 잃었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실질적으로 낮아질 경우 온타리오 철강업계와 퀘벡 알루미늄업계를 비롯한 캐나다 제조업에는 상당한 숨통이 트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양보만 하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이 캐나다에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안이 미국산 술의 캐나다 매장 복귀다.
캐나다 10개 주 가운데 8개 주는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산 주류의 판매를 금지하거나 제한해왔다. 특히 온타리오주는 정부가 운영하는 LCBO 매장에서 미국산 위스키와 와인, 맥주 등을 철수시켰다.
AP에 따르면 LCBO는 미국산 제품 철수 전 연간 약 10억 캐나다달러(미화 약 7억2300만달러) 상당의 미국 제품을 판매했던 거대 구매처다.
미국 주류업계가 받은 충격도 상당했다. 미국 증류주협회에 따르면 캐나다로 향하는 미국산 증류주 수출은 70% 이상 감소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캐나다 주정부의 주류 판매 제한을 철폐하는 것이 단순히 위스키 몇 병을 더 판매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국 농업과 제조업, 주류산업의 시장 접근권을 회복하는 상징적인 사안이 된 것이다.
카니 총리는 19일 각 주 총리들과 화상회의를 갖고 미국산 주류를 다시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직접 요청했다.
서스캐처원주의 스콧 모 총리는 회의 후 카니 총리가 일부 주정부가 시행한 미국산 제품 조달 규정, 특히 미국산 술과 관련한 조치를 가까운 시일 안에 변경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노바스코샤주의 팀 휴스턴 총리도 이 요구가 “협상 테이블에서 직접 나온 것”이라고 확인하면서 최종 합의가 이뤄진다면 미국산 주류 판매를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여기에는 캐나다 연방제 특유의 문제가 있다. 카니 총리가 미국과 합의하더라도 연방정부가 각 주에 “미국산 술을 다시 팔라”고 명령할 수는 없다. 주류 유통과 판매는 상당 부분 주정부 관할이기 때문이다. 결국 온타리오와 브리티시컬럼비아를 비롯한 각 주정부가 자체적으로 미국산 주류 판매 재개를 결정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미국산 술이 매장에 돌아온다고 해서 캐나다 소비자들이 다시 구매할 것이냐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과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반복적인 발언 등에 반발해 캐나다에서는 미국산 제품을 피하고 캐나다산을 구매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됐다. 미국 여행을 꺼리는 분위기도 이어졌다.
휴스턴 노바스코샤 총리는 미국산 술을 다시 매장에 올리는 것과 소비자가 실제로 구매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취지로 말했다. 즉 정부 간 무역전쟁이 끝나더라도 소비자들의 감정까지 곧바로 회복되지는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온 캐나다의 낙농시장도 이번 협상의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트럼프 행정부는 캐나다의 유제품 시장 접근 규정이 미국 농민들에게 불공정하다고 주장해왔다. 미국은 특히 일정 물량의 유제품을 낮은 관세로 캐나다에 수출할 수 있도록 한 관세할당제(TRQ)의 운영방식을 문제 삼아왔다.
백악관은 캐나다가 낙농 분야에서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입장이지만 캐나다 정부는 공급관리제(supply management) 자체는 유지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르블랑 장관은 캐나다의 공급관리 시스템은 “완전히 유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산 유제품이 무관세 또는 낮은 관세로 들어올 수 있는 할당량 운영방식에서는 일부 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캐나다산 목재 문제는 상대적으로 전망이 어둡다. 협상 소식통은 연목(softwood lumber) 분야에서 의미 있는 관세 완화를 얻어낼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BC주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협상의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50% 관세 폭탄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이 실제로 이를 시행할 경우 약 200억달러 상당, 캐나다 전체 대미 수출의 약 5%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분석됐다. 하키스틱 같은 소비재부터 의료용 제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캐나다산 상품이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캐나다 경제에서 미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하면 충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캐나다 상품 수출의 약 72%가 미국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미국에서도 높은 관세는 결국 수입업체가 부담하고 일부 비용이 소비자가격에 전가될 수 있어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도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양국 모두 전면적인 관세전쟁을 피해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캐나다는 철강·알루미늄·자동차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해야 하고 미국은 캐나다 시장에서 농산물과 주류 등 미국 제품의 접근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관세에 따른 자국 소비자의 가격 부담도 최소화해야 한다.
이번 합의가 최종 타결되면 더 큰 협상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북미 자유무역의 기본 틀인 USMCA 재협상을 진행하고 있으며 멕시코와는 이미 공식 협상을 시작했다. 캐나다와의 당면 관세분쟁이 해결되면 미국과 캐나다도 보다 광범위한 무역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합의가 끝났다”고 단정하기에는 이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했다”고 말했지만 카니 총리는 “합의를 향해 가고 있다”고 표현했고, 세부적인 관세율과 자동차 원산지 규정, 미국산 주류의 판매 재개 방식 등은 아직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
새로운 시한은 22일 오전 0시1분이다. 앞으로 남은 협상에서 캐나다가 철강·알루미늄·자동차 관세를 얼마나 낮추느냐, 그리고 그 대가로 미국에 무엇을 내주느냐가 최종 합의의 성패를 가르게 된다. 특히 캐나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의외로 무역협정 문서가 아니라 동네 주류매장의 진열대에서 먼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지난 무역전쟁의 상징처럼 매장에서 사라졌던 미국산 버번과 위스키, 와인이 다시 진열되는 순간, 캐나다와 미국의 관세전쟁도 일단 휴전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가장 현실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뉴스/사진: 밴쿠버 교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