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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더는 미국에 끌려가지 않겠다” ‘실용주의자’ 카니가 무역전쟁 칼 빼든 이유

 

GlobalNews캡처
 
 
 

협상·타협 앞세우던 카니, 1년 만에 대미 전략 급선회…“주권·핵심산업 희생 없다”
5개 대륙 돌며 무역·안보 다변화…美 의존 낮추며 ‘버틸 체력’ 키웠다는 판단
보수·진보 주총리까지 대미 강경론 결집…캐나다 국민 70% ‘에너지 특별세’ 지지
포드 “트럼프가 고통 주면 돌려줘야”…석유·가스·전력, 다음 보복카드 되나

 

미국과의 충돌을 피하며 협상과 타협을 앞세워왔던 ‘실용주의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22일 카니 총리는 약 22분간의 연설을 통해 더 이상 미국의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더 이상 캐나다의 주권을 타협하거나 핵심 산업을 희생할 생각이 전혀 없다. 단순한 협상 결렬 선언이 아니었다. 미국이 고율 관세로 캐나다 경제를 압박한다면 캐나다 역시 보복관세를 포함한 강력한 대응에 나서겠다는 사실상의 ‘무역전쟁 선언’이었다.

 

카니 총리는 보복조치가 캐나다 국민의 생활비와 기업 비용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국민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미국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더 큰 대가를 치르는 길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불과 1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지난해 2월 미국과 캐나다의 관세분쟁이 본격화됐을 당시 카니 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확전 방지’**였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캐나다의 압도적인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정면충돌할 경우 캐나다가 훨씬 큰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판단에서였다.

 

캐나다는 미국과의 협상을 되살리기 위해 일부 정책을 양보했고, 미국을 자극하기보다는 “건설적인 협상”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의 압박이 반복되면서 카니 정부 내부에서도 판단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양보를 통해 시간을 벌 수는 있어도 미국이 관세를 외교·통상 압박수단으로 계속 활용한다면 캐나다 경제 자체가 언제든 미국의 결정 하나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카니가 지난 1년 동안 집중적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미국 없는 캐나다’가 아니라 ‘미국만 바라보지 않는 캐나다’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카니 총리는 유럽과 아시아, 중동 등을 잇따라 방문하며 무역과 투자, 에너지, 안보 관계 확대에 공을 들였다.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던진 발언은 이런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중견국들이 함께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메뉴판 위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같은 초강대국 사이에서 캐나다와 같은 중견국들이 각자 움직이다가는 결국 강대국의 협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다.

 

카니 정부는 말에 그치지 않았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고 일부 관세를 완화하면서 에너지와 임산물 등으로 경제협력 범위를 넓혔다. 유럽연합(EU)과도 무역뿐 아니라 기술·에너지·안보 분야의 협력을 강화했다. 핵심광물과 에너지 분야에서는 인도와 아세안(ASEAN),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으로 교역망을 넓히는 작업도 추진했다.

 

카니 총리는 이번 연설에서 이러한 성과를 자신의 대미 강경노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지난 1년간 5개 대륙에 걸쳐 20개 이상의 무역·안보 관련 협정을 체결했다며 캐나다가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즉 지난해의 캐나다가 “미국과 싸우면 당장 갈 곳이 없다”는 두려움 속에서 협상했다면, 지금은 적어도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선택지를 만들었다는 자신감이다.

 

그러나 카니가 강경해질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결정적인 배경은 국내 정치다. 미국 문제를 놓고서는 캐나다 정치권의 진보와 보수 경계마저 흐려지고 있다. 평소 연방 자유당 정부와 충돌하는 일이 적지 않았던 온타리오주의 더그 포드 주총리까지 카니의 강경 대응에 힘을 실었다. 포드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이용해 캐나다 국민에게 경제적 고통을 주려 한다면 캐나다 역시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미국에 안겨야 한다며 석유·천연가스·전력 등 에너지를 협상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부터 미국에도 불편한 문제가 시작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 규모만 놓고 보면 미국이 압도적으로 크다. 캐나다가 일반 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해서 미국 경제 전체를 흔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에너지는 이야기가 다르다. 미국의 일부 지역과 산업은 캐나다산 원유과 천연가스, 전력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특히 북부 국경지역에서는 캐나다와 미국의 전력망이 깊숙이 연결돼 있다.

 

따라서 캐나다가 일반 소비재가 아니라 미국이 단기간에 공급처를 바꾸기 어려운 에너지에 수출세나 특별부담금을 부과할 경우 미국 정유업체와 제조업체는 물론 일부 지역의 소비자 비용에도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때문에 캐나다에서 ‘에너지 특별세’가 새로운 보복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여론도 강경하다. 캐나다 여론조사업체 레제가 협상 결렬 직전 실시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약 70%가 미국에 수출하는 에너지에 특별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니 총리는 그동안 에너지 무기화에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캐나다 에너지 기업과 산유지역에도 피해가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연설에서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미국 역시 우리가 에너지 공급을 중단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 공급중단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사용을 꺼려왔던 에너지 카드가 협상 테이블 위에 올라올 수 있다는 경고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카니가 이 카드를 실제로 꺼낼 경우 이번 무역전쟁은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 일반 제품에 50% 관세를 매기는 것과 미국 산업에 필요한 에너지 가격을 건드리는 것은 파급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캐나다에도 위험한 승부다. 캐나다는 여전히 상품 수출의 상당 부분을 미국시장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동차와 철강·알루미늄·에너지·농업 공급망은 국경을 사이에 두고 사실상 하나의 생산체계처럼 움직인다.

 

에너지를 무기화할 경우 미국을 압박할 수 있지만 동시에 캐나다 생산업체와 산유지역의 수출에도 충격이 돌아올 수 있다. 보복과 재보복이 반복되면 결국 양국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비용을 떠안게 된다.

 

따라서 카니의 전략은 미국과 경제관계를 끊는 ‘탈미국’이라기보다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 협상력을 확보하려는 ‘위험 분산’에 가깝다.

 

미국은 여전히 캐나다가 포기하기 어려운 최대 시장이다. 그러나 미국 역시 캐나다의 에너지와 핵심광물, 알루미늄, 목재, 비료 등 전략자원을 하루아침에 다른 곳에서 모두 조달하기는 어렵다.

 

카니 정부가 노리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 규모로 미국과 정면승부하는 것은 어렵지만, 미국이 캐나다에 의존하는 분야를 정확하게 찾아 압박한다면 협상력은 달라질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결국 지난 1년은 카니에게 준비기간이었다. 미국과 협상하면서 시간을 벌었고, 그 사이 유럽과 아시아·중동으로 외교와 무역의 외연을 넓혔다. 그리고 미국의 요구가 캐나다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판단한 순간 협상장을 떠났다.

 

이제 미국과 캐나다의 싸움은 단순히 ‘50% 관세 대 보복관세’에 머물지 않을 가능성이 커졌다. 캐나다 정치권이 초당적으로 결집하고 국민 여론까지 강경해지면서 카니에게는 이전보다 훨씬 강한 정치적 기반이 생겼다. 여기에 에너지라는 카드까지 등장했다.

 

지난해의 카니가 “미국과 어떻게 합의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지금의 카니가 던지는 질문은 달라졌다. “미국과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캐나다가 버틸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고 판단한 순간, 중앙은행 총재 출신의 신중한 실용주의자는 협상가에서 ‘무역전쟁의 지휘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만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다. 강경한 말보다 중요한 것은 캐나다 경제가 장기전을 얼마나 견딜 수 있느냐다. 카니의 승부수는 미국을 굴복시키느냐보다, 미국의 압박 앞에서도 캐나다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힘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뉴스/사진: 밴쿠버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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