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V캡처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전쟁이 결국 ‘누가 먼저 물러설 것인가’를 겨루는 힘겨루기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관세 문제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밀한 경제관계 가운데 하나였던 미국과 캐나다가 좀처럼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캐나다가 9월 8일 0시1분부터 276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15~50%의 보복관세를 공식 발효하면서 양국의 관세전쟁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이번 충돌은 미국이 지난달 22일부터 캐나다산 제품 276억 캐나다달러 규모에 최고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본격화됐다.
미국이 사용한 무기는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섹션 338(Section 338)’이다. CNN은 이 조항이 사실상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이례적인 수단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관세 대상에는 우유와 꿀 같은 식품에서부터 스마트폰, 장갑, 낚싯대, 하키스틱, 크리스마스 장식품, 주류 등 다양한 캐나다산 제품이 포함됐다.
다만 모든 캐나다산 제품에 50% 관세가 붙은 것은 아니다. CNN에 따르면 새 관세 대상은 미국의 전체 캐나다산 수입 가운데 약 5% 수준이다.
캐나다도 즉각 맞불을 놨다. 카니 정부는 미국이 캐나다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달러에는 달러로, 세율에는 같은 세율로(dollar for dollar, rate for rate)’ 대응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따라 8일부터 미국산 철강·알루미늄과 유제품, 가전제품, 농업장비, 펄프·종이, 플라스틱, 전자제품 등을 대상으로 15%, 25%, 50%의 추가 관세가 적용됐다.
일부 철강·알루미늄 제품은 기존 25%였던 보복관세가 50%로 올라갔으며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기존 보복관세도 계속 유지된다.
캐나다 정부가 공개한 목록에는 700개가 넘는 미국산 품목이 포함됐다. 미국산 철강과 알루미늄뿐 아니라 가구와 의류에는 최고 50%, 일부 가전제품과 치즈 등에는 25% 관세가 적용된다.
이번 사태가 더욱 심각한 것은 양국이 서로에게 평범한 무역 상대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캐나다는 미국의 최대 해외 고객 가운데 하나다. 캐나다와 미국의 공급망은 자동차와 에너지, 철강, 농산물, 제조업에 걸쳐 국경을 넘나들며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마르코 멘디치노 전 캐나다 장관은 CNN 인터뷰에서 2025년 미국 기업들이 캐나다에 판매한 상품과 서비스가 4260억달러를 넘었다며 하루 평균 11억달러 이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관세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어느 한쪽만 피해를 보는 구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이 캐나다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수입업체가 우선 비용을 부담하고, 상당 부분이 소비자가격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캐나다의 보복관세가 높아지면 미국 기업들의 캐나다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출 감소와 생산·고용 축소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CNN은 캐나다가 미국 여러 주의 최대 해외 고객이라는 점에서 미국 기업 역시 타격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동차산업은 양국 무역전쟁의 위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동차 한 대가 완성되기까지 부품이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여러 차례 오가는 북미 자동차산업 특성상 관세가 반복적으로 적용되면 생산비용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결국 자동차 가격 상승과 판매 감소, 생산량 축소로 이어져 미국과 캐나다 노동자 모두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어느 쪽도 먼저 물러서기 쉽지 않다. 카니 정부는 미국과 막판까지 협상했지만 미국 측이 요구한 조건이 캐나다의 국익과 노동자·기업에 불리하다고 판단해 협상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이 요구한 양보가 “공정하지도, 경제적으로 타당하지도 않았다”며 불리한 협정을 체결하느니 관세에 맞서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CNN은 트럼프가 캐나다를 향한 비판 수위를 높이는 동시에 향후 캐나다산 트럭과 자동차 등에 추가로 50%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까지 거론했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협상의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다. 멘디치노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카니 총리 사이에는 여전히 일정한 상호 존중이 존재한다며 양국이 결국 다시 협상 테이블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이를 계승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캐나다명 CUSMA)이 양국에 막대한 경제적 이익과 일자리를 만들어왔다며 무역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협상이 늦어질수록 청구서는 커질 수밖에 없다. 캐나다 정부도 관세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고 노동자와 기업을 위한 75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추가 지원책을 내놨다. 기존 지원까지 합치면 정부가 무역충돌에 대응하기 위해 투입하는 지원 규모는 훨씬 커진다.
미국 소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기업이 관세 부담을 모두 흡수하지 못하면 식품과 생활용품, 가전제품, 자동차 등 가격에 일부가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에너지와 운송비 부담까지 높은 상황에서는 기업이 관세 비용을 자체적으로 감당할 여력도 줄어든다.
미국과 캐나다는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경제 동반자로 꼽혀왔다. 하지만 이제 양국은 서로의 상품에 관세를 올리고 상대방이 먼저 물러서기를 기다리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는 “미국이 더 이상 손해 볼 수 없다”고 압박하고, 카니는 “나쁜 협정에는 서명하지 않겠다”며 맞서고 있다. 그리고 두 정상이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비용은 워싱턴이나 오타와가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의 기업과 노동자, 소비자들의 지갑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결국 이번 미·캐나다 무역전쟁의 최대 질문은 관세가 얼마나 더 올라가느냐가 아니다. “트럼프와 카니 가운데 누가 먼저 눈을 깜빡일 것인가, 아니면 양국 소비자가 더 큰 대가를 치르기 전에 두 사람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인가.” 북미 최대 교역 파트너 사이의 힘겨루기가 이제 본격적인 장기전의 갈림길에 들어섰다. <뉴스/사진: 밴쿠버 교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