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News캡처
카니 “경제적 부담 따르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
8일부터 276억달러 규모 미국산 제품에 15~50% 보복관세
철강·알루미늄 최고 50%…미국산 제품 가격 상승 불가피
트럼프는 봄바디어까지 압박…미·캐나다 무역전쟁 장기화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고율 관세에 맞선 캐나다의 ‘맞불 관세’가 8일 공식 발효되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보복관세 발효에 맞춰 공개한 대국민 영상 메시지를 통해 미국의 관세 압박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카니 총리는 현재 캐나다가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미국의 관세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더 큰 경제적·전략적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니 정부가 이번 보복관세를 강행한 배경에는 단순히 미국산 제품에 세금을 더 물리는 차원을 넘어 미국에 대한 과도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캐나다의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캐나다 정부는 이번 조치를 미국이 먼저 부과한 관세와 동일한 규모와 세율로 대응하는 이른바 ‘달러 대 달러, 세율 대 세율’ 원칙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8일 0시 1분을 기해 276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15%, 25%, 5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지난달 22일부터 276억 캐나다달러 규모의 캐나다산 제품에 50% 관세를 부과한 데 대한 맞대응이다.
보복관세 대상은 철강과 알루미늄, 유제품, 가전제품, 농업 장비, 펄프·종이, 플라스틱, 전자제품 등 광범위하다. 일부 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은 기존 25%였던 보복관세가 50%로 두 배 올라갔다. 가전제품과 치즈 등 일부 유제품, 철강·알루미늄 파생제품 등에는 25%, 일부 산업용 공구 등에는 15%가 적용된다. 품목에 따라 의류와 가구 등에도 50% 관세가 적용된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이 캐나다산 제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동일한 수준으로 대응함으로써 자국 기업들이 캐나다 시장에서 미국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미국 측에도 무역전쟁의 비용을 체감하게 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보복관세에는 캐나다 역시 치러야 할 대가가 따른다. 관세가 붙은 미국산 제품을 수입하는 업체의 비용이 올라가고 이 가운데 일부가 소비자가격에 전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제품을 대체할 캐나다산이나 제3국 제품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 소비자와 기업의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카니 총리도 앞서 보복관세가 캐나다인의 비용을 높이고 선택의 폭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일방적인 관세 압박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이 장기적으로 캐나다 경제와 산업에 더 큰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캐나다 정부는 관세 충격을 받는 근로자와 기업을 위해 75억달러 규모의 신규·확대 지원책도 내놨다. 이는 기존 약 250억달러 규모의 지원에 추가되는 것으로, 중소기업의 유동성 지원과 산업 경쟁력 강화 등이 포함된다.
양국의 갈등은 지난달 무역협상이 결렬된 이후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에 대한 관세 압박에 이어 온타리오호를 미국 내에서 ‘Lake America’로 부르도록 하는 행정명령까지 서명했고, 캐나다 정치 지도자들을 겨냥한 공격적인 발언도 이어갔다.
최근에는 캐나다의 대표 항공기 제조업체 봄바디어(Bombardier)까지 직접 겨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봄바디어가 미국에서 항공기를 계속 판매하려면 미국에서 생산해야 한다며 사실상 미국 시장 퇴출 가능성을 경고했다.
다만 실제 판매금지 조치가 어떤 방식으로 시행될지는 명확하지 않다. 봄바디어는 미국 47개 주의 약 2800개 공급업체와 거래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약 3500명을 고용하고 있어,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의 압박이 자국 일자리와 항공산업에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 규모만 놓고 보면 장기적인 무역전쟁에서 캐나다가 미국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은 캐나다의 최대 수출시장이며 수십 년 동안 양국의 자동차·에너지·농업·제조업 공급망이 사실상 하나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역시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 캐나다의 보복관세는 미국산 제품의 캐나다 시장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동시에 캐나다와 교역 규모가 큰 미국의 접경주와 제조업 지역을 직접 압박하게 된다.
특히 블룸버그는 이번 조치가 캐나다와 교역량이 많은 미시간과 오하이오 등 미국의 주요 산업지역 수출업체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관세로 피해를 보는 지역의 공화당 정치인들에게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도 캐나다와의 무역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캐나다와 경제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된 접경지역에서는 관세가 결국 미국 기업의 수출 감소와 소비자 가격 상승, 일자리 불안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캐나다의 보복관세는 단순히 미국산 제품에 세금을 더 매기는 조치라기보다 미국 기업과 정치권이 무역전쟁의 비용을 직접 체감하도록 해 워싱턴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압박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양측이 한 발씩 물러서지 않는다면 관세가 다시 보복을 낳고, 그 보복이 또 다른 보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미국산 제품 가격 상승과 공급망 비용 증가는 캐나다 기업과 소비자에게도 고스란히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거대한 경제권을 공유해온 미국과 캐나다가 이제 서로의 제품에 최고 50%의 관세를 물리는 상황까지 치달으면서 양국의 무역갈등은 단순한 관세 분쟁을 넘어 정치·산업 전반의 힘겨루기로 확대되고 있다.
카니 정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보복관세로 캐나다 역시 상처를 입을 수 있지만, 아무런 대응 없이 미국의 압박을 받아들이는 대가는 그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뉴스/사진: 밴쿠버 교차로>